정보마당
막걸리,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 있는 술'
- 게시일2022.08.25.


▲ 막걸리는 탁주 가운데 도수가 가장 낮은 술이다.
부산 = 민예지 기자 jesimin@korea.kr
사진 = 김순주 기자 photosun@korea.kr
영상 = 이준영 기자 coc7991@korea.kr
부산 금정산성 중턱에 위치한 금정산성막걸리 누룩방에 들어서자 선반에서 발효 중인 수백 개의 누룩이 눈에 들어왔다. 24시간 연탄불로 온도를 조절하는 누룩방은 약 세 평 남짓한 공간으로 실내 온도는 48~50도 정도로 유지된다. 지름 30cm 정도의 피자도우 모양을 한 누룩을 자세히 살펴보자 색이 다른 곰팡이가 눈에 띈다. 유청길 금정산성막걸리 대표는 “전문용어로 황국, 백국, 흑국이라고 한다”며 “이 세 가지 균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 산성누룩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누룩곰팡이가 다양한 만큼 막걸리에서 다채로운 맛과 향이 난다는 것이다.
전통 누룩을 사용해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 가운데 금정산성막걸리 양조장은 가장 먼저 민속주로 인정받은 술이자 막걸리 분야에서 유일하게 식품명인으로 지정받은 유 대표가 이끄는 곳이다. 전국 유통망을 갖춘 막걸리 회사 양조장 가운데 전통 누룩을 쓰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개량 누룩인 입국이 전통 누룩을 대신했다. 입국은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술 빚기 시간을 단축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전통 누룩에 비해 미생물 가짓수가 한정돼 술의 맛과 향이 단순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산성누룩’으로 유명한 이곳은 누룩을 발로 밟는 족타식으로 전통 누룩을 빚는다. 유 대표는 “많이 밟아주면 누룩이 좀 더 찰져지고, 누룩곰팡이를 더 많이 피게 하고, 밀 속에 있는 전분의 양을 증가시킨다”며 "우리 조상의 지혜가 누룩 속에도 있다”고 말했다. 테두리는 두껍고 가운데는 얇은 게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테두리가 두껍다는 것은 수분을 오래 머물고 있다는 것이고, 덕분에 누룩 안쪽까지 골고루 누룩 꽃이 필 수 있게 된다.

▲ 금정산성막걸리 누룩방. 발효 중인 수백 개의 누룩이 누워있다.
발효가 끝난 누룩은 살균효과를 위해 햇빛에 말리는 ‘법제’ 과정을 거친다. 완전히 건조된 후에는 잘게 부숴 쌀로 만든 고두밥을 버무려 물에 섞은 후 약 1주일간 발효시키면 금정산성막걸리가 만들어진다.
유 대표는 발효가 다 된 막걸리를 체로 걸러 취재진에게 한 잔씩 건넸다. 달달 하면서도 고소하고 시큼한 향에 지나가던 벌 들이 마치 꽃에 날아들 듯 유 대표의 손을 맴돌았다.
유 대표는 막걸리의 매력에 대해 묻자 “좀 걸쭉하면서도 질긴 듯하고, 부드러우면서 또 배도 좀 부르게 하고 기분도 좋게 하는 것”이라며 “막걸리 속에는 우리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 있다”고 했다.
이어 “여럿이 어울려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장구도 치고 하면서 기분 좋게 마셔야 제맛” 이라고 덧붙였다.

▲ 발효가 끝난 막걸리를 체로 거르는 작업.
우리술은 크게 맑은술(청주), 탁한술(탁주), 소주(끓여서 증류한 술)로 나뉘는데 막걸리는 탁주 가운데 도수가 가장 낮은 술이다. 막걸리는 역사가 깊다. 삼국 시대 각종 문헌에서 막걸리 제조 방법과 관련된 기록이 확인되고 있다.
막걸리는 우리 선조들이 땀 흘려 일한 뒤 갈증을 씻어내는 음료이자 배고픔을 채워주는 식량이었다. 유청길 대표는 “농삿일하다 배고프면 들판에서 한 그릇 따라 마시며 허기를 달랬던 술”이라고 정의했다.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가 밥과 같다고 했다.
막걸리가 허기를 달래는 밥과 같은 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제조 방식과 관계가 있다. 과거에는 전통 누룩에 물과 곡식을 넣어 발효된 곡주에 청주를 다 떠내고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걸러내는 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술지게미가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요즘은 막걸리 제조 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청주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활용하는 게 아니고 막걸리 자체를 맛있게 마시기 위한 제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 술의 뿌리인 전통 누룩을 사용하고, 인공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으면서도 탁주의 오미(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 매운맛)를 구현한 ‘프리미엄 막걸리'를 생산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한때 맥주와 소주, 와인 등에 밀렸던 막걸리가 최근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막걸리는 내수와 수출 시장에서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20년 주류 시장이 1.6% 후퇴했지만 막걸리 시장은 52.1% 성장했다. 국내 막걸리 소매 시장 규모는 2016년 3000억 원대에서 지난해 5000억 원대까지 성장했다.
수출 역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막걸리 수출액은 1570만2000달러로 전년 대비 27.7% 늘었다. 올해 1분기 수출액도 424만8000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1% 증가했다. 주요 수출국은 일본(약 719만 달러), 미국(약 290만 달러), 중국(약 153만 달러) 순이다.
개별 기업별로 보면 국순당의 연간 수출액이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배상면주가도 지난해 수출액이 전년 대비 274% 급증했다. 서울장수는 베트남, 호주, 캄보디아, 미국, 일본 등으로 수출을 확대하면서 현재 27국에 수출 중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간한 '2021주류시장트렌드보고서'는 막걸리 수출 증가의 원인으로 "한국 드라마 및 영화를 통해 한국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