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개
[봄] 나물
나물
나물
정의
식물성 식재료로, 삶거나 볶거나 날것 상태로 양념해서 버무린 밥반찬으로서의 음식. |
내용
수렵과 채집에 의존해 살던 시절, 온갖 풀 중에 특정 종種은 사람 손에 선택되어 거주지 근처에서 재배되거나 자연상태로 번성하는 야생 나물이 되었다. 중세국어에서 ‘나물’은 본디 식용식물이란 뜻이었으나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이라는 2차 뜻이 추가되었다. 우리 말 ‘나물’ 관련 흔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말 작성되어 조선 초기 사역원에서 간행한 『노걸대 老乞大』에 기록된 ‘나므새’이다. 연근, 오이, 파, 마늘, 가지, 부추, 무, 동아, 박, 겨자, 순무, 시금치, 다시마 등을 그 사례로 꼽는 것으로 보아 재배한 채소를 일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의 직접 변형인 ‘남새’가 북한에서는 심어서 가꾸는 나물 또는 푸성귀에 해당하는 표준어로 ‘남새국, 남새닭알말이, 남새말이빵, 남새볶음, 남새전골, 남새지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무, 배추, 미나리 같은 채소菜蔬를 말한다. 남한에서도 ‘남새’는 강원도 방언으로 쓰이지만 이는 조리해서 접시에 담은 ‘반찬’이라는 의미소가 빠진다는 점에서 ‘나물’과 의미가 분화된다.
한국의 나물에 대한 외국 기록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이던 니콜라스 위트센N. Witsen이 1705년 출간한 『북쪽과 동쪽의 오랑캐들Noord en Oost Tartarye』을 꼽을 수 있다. 이는 1653년(효종 4) 제주도에 표착해서 1666년(현종 7)까지 하멜과 함께 조선에 체류한 마퇴스 에이보컨M. Eibokken이 143개의 조선말 목록에 올린 전라도와 제주 방언으로, 각각 ‘나멀’과 ‘나말’이다. ‘나모’는 나무의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조리서의 나물은 대개 ‘숙채熟菜’이고, ‘생채生菜’는 드물다. 당시는 재배한 나물보다 산나물과 들나물이 훨씬 많은 데다 재배한 나물들도 품질이 야생에 가까워서 쓰고 떫고 아린 맛을 빼내려고 삶거나 데쳤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서유구는 재배와 활용 양식에 따라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관휴지灌畦志에 128종의 나물을 정리하였고, 인제지灌畦志에는 야생 나물의 식용 부위를 싹·이파리·눈·꽃·줄기·뿌리로 구분해서 구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19세기 조선 나물들을 추렸다.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1917)에 따르면 우리 나물의 조리법은 “뜨거운 물에 데쳐서 쓴맛을 뺀 후(대개 기름과 소금으로 맛을 내는 중국 조리법과는 달리) 초醋와 청장淸醬, 다진 마늘과 겨자”로 맛을 냈다.
동절기를 대비해서 틈틈이 푸성귀를 채집하고 뜨거운 물에 데쳐서 햇볕에 말려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를 다시 물에 불려 조리하는 ‘말린나물’은 북반구 전역에서 확인되는 식문화 전통이다. 겨우내 묵은 나물 ‘진채陣菜’ 아홉 가지를 오곡밥과 함께 먹으면 1년 동안 질병을 예방한다는 속설이 있으며, 이들은 ‘나물명절’이라 불리는 정월대보름 절식으로도 꼽힌다. 본디 나물은 고기와 비할 수 없이 볼품없고 누추한 반찬으로 여겨졌으나 봄철이면 독특한 맛과 향기로 겨울철 잃은 입맛을 돋게 하는 반가운 음식이다. 또 보릿고개나 기근 때는 더 고맙고 각별한 구황식품이었다. 요즘은 피를 맑게 해 현대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귀한 식량이며, 약초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렇듯 여러방식으로 활용되던 나물은 산업화 이후 대량 생산 및 슈퍼마켓식 유통에 최적화된 식재료들로 활용 범위가 대폭 줄었으나 21세기 채식주의 운동으로 활용 종수가 다시 늘어나는 세계 추세이다.
특징 및 의의
식용식물인 나물은 조리법에 따라 반찬으로서의 나물도 되고 김치도 된다. ‘나물’은 한국 식문화전통의 고유하고 독특한 집약이기도 한 ‘김치’처럼 문화 배경이 다른 언어로는 번역이 어려운 고유명사다. 이는 건강식에서 나아가 미식美食으로 그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또한 인류가 당면한 생태상의 재난 대비 및 생명공학의 원료가 될 수 있고, 생명 다양성 및 지식재산권이 달린 연구 소재로 더 각별한 가치를 갖게 되었다.
※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